2015 전원길 개인전 -마당백초프로젝트-
2015. 11.21-11.30 (Opening 11.21 pm 3-5)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표면은 씨앗으로 덮여있다. 지구는 인간세상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식물의 세계이다. 사람이 떠난 집이나 도시는 오래 가지 않아 식물로 뒤덮인다. 사람이 땅에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식물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주의 대부분을 식물이 없이는 공급 받을 수 없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내 작업실 주변은 식물천지이다. 2001년 11월 이곳에 작업실을 짓고 살면서 나는 식물들의 혜택을 많이 입었다. 조용한 자연 환경과 매년 눈에 띄게 자라는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변화를 아내가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나뭇잎, 사과, 하늘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계절에 따라 점차로 색이 변하고 생명이 순환하는 자연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연 속에서 살아야한다. 언제나 친근하게 마주 할 수 있는 식물세계는 자연의 순환과 변화를 회화로 표현하는 나의 작업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식물들이 성장하고 결실하는 순간들이 나의 머릿속에 담겼다가 그림으로 혹은 설치와 사진작업으로 나온다.
봄에 나무에 물이 오르는 것을 느낄 즘이면 주변 풍경은 아주 옅은 연두기미로 시작해 점차 색이 짙어지면서 세상은 초록색으로 뒤덮인다. 충만한 성장에너지로 가득 찼던 땅이 결실의 계절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가을 색으로 그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다. 눈으로 덮인 세상은 환상의 세계이다. 하늘색을 배경으로 시간의 띠가 흐르고 구름과 설산을 연상시키는 곳에 펼쳐지는 ‘영원한 풍경’ 시리이즈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올 해 경기문화재단의 공모지원사업 별별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마당백초프로젝트는 그동안 여러 전시회를 통해 다루었던 풀잎시리이즈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작업을 위한 시각 대상으로서 식물들을 바라보기 보다는 한 발짝 더 다가서서 풀들의 이름과 생태적 특성을 조사하는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리서치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되었다. 이를 테면 적절한 장소에 어울리는 하나의 시각적 조형물로 자리 잡은 온실, 알루미늄 철사를 두드리고 각인하여 만든 잡초의 이름표, 손 글씨로 드로잉과 함께 긴 종이에 써내려간 리서치 페이퍼 그리고 화분 사진과 진행과정을 담은 동영상 모두 연구과정이면서 작품이 되었다.
백가지 풀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지만 처음 목적한 바와 같이 주변에서 자라는 잡초들을 새롭게 대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소중한 출발이라고 하겠다.
자라나는 식물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그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다. 피상적 관찰이 아닌 심적 밀착을 유지해야 함을 느낀다. 금년에 진행된 몇몇 작업들은 비록 각기 다른 전시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계기로 제작되고 전시되었지만 백초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식물의 성장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였다.

백초의 집 만들기
작업실 마당 주변에는 이름 모를 많은 풀들이 자란다. 언제나 보는 것들이지만 대다수의 풀이름을 모른다. 우선 나는 이들을 채취하여 화분에 담아 키우고 관찰할 온실을 지었다. 처음에는 직접 제작을 생각했으나 필요한 천창과 창문등을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민 끝에 DIY 타입의 재료를 이용하여 조립식 온실을 만들기로 했다.
작업실 마당 나무 그늘 아래 적당한 곳에 터를 잡고 조립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오랫동안 보관해오던 중고 나무판자를 이용해서 마루를 깔고 그 위에 온실 프레임을 설치하고 복층 렉산을 끼운 다음 실리콘 작업으로 마무리 하였다. 온실 안에 화분대는 각 파이프를 용접하여 만들었다.
백가지 풀을 키우기에는 다소 좁았으나 두 칸으로 나누어 설치하고 중앙에 별도의 화분대를 만들어 설치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잡초연구
온실에 풀들은 아름답고 특별한 각기 다른 개별 형태를 보여 준다. 처음에는 넉넉했던 화분이 풀이 자람에 따라 더 큰 화분으로 옮겨주어야 했다. 온실 속 풍경은 나날이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변해간다. 화분에 물이 마르는 속도도 틀리고 자라고 뻗어나가는 방식도 틀리다.
봄철 마당을 한 바퀴 돌면 30-40 종류의 풀들은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풀들은 제각기 발아, 성장, 개화, 결실하는 시기가 다르고 수정하고 열매 맺는 방식 그리고 씨르 퍼트리는 방법도 제각기다. 쇠비름이나 까마중은 익히 아는 풀이지만 볼 수 없어 이웃에게서 얻어왔는데 언젠가 본적인 있는 장소에서 뒤늦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당을 다소 벗어나 산으로 들어가면 덩굴류의 풀들을 볼 수 있었다. 노박 덩굴은 근처 산에서 찾았지만 언제나 울타리로 심은 조팝나무를 타고 오르며 자라는 청미래 넝쿨은 마당 가까이에도 많다.
자세히 보면 같은 종이라도 그 종류가 다른 것들이 많다, 제비꽃은 우리 마당에서 만도 몇 가지 종류를 찾을 수 있었다. 사초 종류들은 결실하기 전까지는 초보자들은 그 이름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아직도 풀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 쉽게 그 이름을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조사된 풀들은 그 이름을 익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잡초들을 온실 화분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풀은 수분을 많이 소비하고 어떤 풀은 좀 건조해도 잘 견딘다. 토분에 풀을 심었을 경우에는 흙의 건조 정도를 잘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토분에 심은 몇 몇 풀들이 죽은 것은 아마 물의 증발속도에 맞추어 물을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풀이름을 조사하는데 있어서 스마트 폰 엡인 ‘모야모’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풀 사진을 올리면 3분 내로 그 이름을 알려주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한두 가지 풀들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주변에서 자라는 모든 풀들의 이름을 알아 낼 수 있었다. 또한 책과 인터넷을 도움을 받아 그 자세한 형태적 생태적 특성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풀들이 각기 다른 약효를 가진 약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풀들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은 쭉 펼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타이프용지에 펜으로 적어 나갔다.


사진작업
햇빛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 구조를 달리하면서 결실하고 잎을 떨어뜨리기 전에 그 색을 바꾼다. 온실 화분대에서 하나씩 꺼내어 하얀 배경에 풀 사진을 찍는다. 전체를 찍고 또 부분의 자세한 모양도 찍는다. 원래 자연 속에서의 풀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의 풀 나무들과 섞여있어서 쉽사리 그 형태의 진면모를 볼 수 없다.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나는 모든 풀들이 형태와 구조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자연속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식물의 어느 부분을 잘라보아도 아름답다. 나는 사진의 각 부분을 연결하여 각 이미지를 확장시킴으로서 절단과 연결을 통한 또 다른 자연상태를 시도하고 연결된 구조를 확장한 시각적 관계를 만든다.


드로잉 & 페인팅
하루에 한 놈씩 그 형태를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처음에는 생긴 대로 그리지만 차츰 단순하게 혹은 연상되는 형태로 자유롭게 변형되어 마침내 독립적인 기호가 된다.
이 드로잉 작업은 그동안 시리이즈로 진행해오고 있는 ‘영원한 풍경’ 시리이즈와 연계된 화면으로 옮겨진다. 드로잉으로 마무리 되는 이 작업에는 추상화된 식물성 코드들이 펼쳐지고 이들은 반복 확장되며 자라고 스러지는 풀 숲 을 암시한다.
배경을 이루고 있는 푸른색은 어느 날의 하늘색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자라나는 초목들은 모두 하늘과 빛을 향해 자란다. 풀들은 언제나 빛과 함께 존재하고 빛은 언제나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또 그 시간을 타고 흐른다. 화면의 중심을 가로지르면서 드러나고 사라지는 그라데이션 띠는 이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단지 흰색과 검은 색의 선으로 이루어지는 드로잉은 배경의 푸른색의 깊이와 밀도 그리고 차츰 차츰 변하는 띠의 명암의 차이에 따라 풍부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설치작업
1. 백초를 기다리며
리서치와 드로잉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연계된 몇몇 작업들도 제작되었다. 마당에 설치된 ‘백초를 기다리며’는 콘크리트에 손가락의 위치에 따라 패턴을 만들어 100개의 구멍을 만들어 흙에 담겨진 알 수 없는 풀들을 기다리는 작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라 오르는 풀들은 설치된 테이블 작업의 형태를 변형시키며 생태적 작품으로 존재한다. 이는 나의 기다림이 함께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나는 풀들이 자라 오르는 것을 관찰하면서 실내에 싹이 튼 날짜를 표시해가는 드로잉 작업을 하였다. 흙을 덮고 있는 콘크리트는 자연의 영역을 잠식해가는 문명의 흔적이며 그 사이에 뚫려진 구멍은 이 시대 자연이 처한 위기와 자연의 소중한 영역을 상징한다.
병행해서 작업한 금강의 풀들은 금강변의 흙을 이용하였다. 격자 모양의 비좁은 틈새에서 금강의 풀들이 자라 오른다. 어디서 자라든 풀들은 그 풀의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2. 명아주의 공간
이 작업은 한 해살이 풀인 명아주를 이용한 설치작업이다. 마른 명아주 줄기에 알류미늄 설사를 두드려서 만든 띠에 식물에 대한 조사 내용을 적어 걸어준다. 두드림 작업에 의해 자연스럽게 휘어진 알류미늄 띠는 명아주의 구조를 따라 또 다른 공간을 만든다. 식물 자체의 자연 정보와 인간에 의해 조사된 정보 또 다른 조형적 만남을 시도한다.

체험학습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작업실을 찾았다. 프로젝트의 실행 동기와 과정 등을 설명하고 온실 속에 잡초들을 함께 보고 직접 마당의 풀들을 화분에 담아 기르도록 하였다.
흔히 널려 있는 풀이지만 화분에 담아 놓으면 귀하게 생각하는 여느 화초 못지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잡초들도 달리 보게 된다.

잡초식 체험
잡초들 대부분은 먹을 수 있다. 나물을 무쳐먹거나 쌈으로 혹은 국거리도 된다. 화전이나 효소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사람들이 잡초라고 하지만 사실 잡초는 없다. 흔하디흔한 풀들의 식용 법을 아는 것은 인간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생존 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하는 첫 번째 단계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에 의존하여 몸을 회복 하려고 한다. 이는 우리와 함께 사는 모든 것은 이미 우리와 함께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아는 것은 우리의 삶을 위한 기본적인 지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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